그냥 두기 아까운 햇살이다. 평발이라는 이유로 걷는 것이라면 질색이지만, 오늘은 하릴없는 사람처럼 어슬렁거리며 아파트 단지를 걷는다. 다 늘어진 티셔츠에 트레이닝바지, 벙거지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뻔뻔스러워진다.시선이 닿는 곳마다 봄꽃이다. 아직은 바람이 찬데 잎도 없는 나뭇가지에 송이송이 꽃이 매달려있다. 부지런한 '겨울눈' 때문이다. 겨울눈이란 이름만으로 겨울에 생겨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여름부터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른 봄꽃을 보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무더운 여름 땡볕과
빨개진 눈으로 형광등을 쏘아본다. 재채기 참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해서 따라 해봤지만 소용이 없다. 조용했던 수업 분위기가 재채기 소리에 한순간 술렁거린다. 급하게 터져 나오는 생리현상에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있겠냐마는 코로나19로 민감한 시기라 혹 오해할까봐 눈치가 보인다.봄이다. 겨울이 흑백사진의 무채색의 풍경이라면 봄은 칼라 사진을 보는 듯 화려하다. 실바람에 날리는 꽃잎 속에 사람들의 표정 또한 생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나는 꽃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연신 재채기를 한다. 눈과 코가 간지러워 휴지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다.
꿈을 잘 꾼 어느 날, 기대감을 가지고 로또복권을 샀다. 추첨하는 시간에 맞춰 TV를 틀었는데 깜짝 놀랐다. 화면에 굉장히 낯익은 숫자들이 연달아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 심장이 급격히 빨라지기 시작했다.여섯 개의 숫자중 세 개의 숫자를 외우고 있던 나는, 나머지 숫자를 확인하기 위해 재빨리 지갑에서 로또용지를 꺼냈다. 떨리는 손으로 숫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확인하니, 아! 이게 웬 횡재인가. 하나만 틀릴 뿐 다섯 개의 숫자가 맞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믿어지지 않는 일이 나에게서 일어나다니
여행은 사람을 연하게 만든다. 여유로움을 배우고 비워내어 가벼워지기도 한다. 내일을 여는 에너지까지도 선물 받는다. 불일암으로 오르는 길이다. 마음은 소나무와 대숲을 지나는 바람과 얘기하고 눈은 호젓한 산길을 따라 호사를 누린다. 명절 뒤라 붐비지 않는 산길의 조용함이 더욱 좋다.'무소유길'이라는 푯말을 따라 걷는다. 뭉게구름 같은 욕심들이 스르륵 내려 바닥에 주저앉는 듯하다. 무소유길은 법정스님께서 다니시던 길이다. 흙길을 걷다보니 포장된 아스팔트길을 걷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정월 추위만 아니라면 신발을 벗고 걸어가고 싶다
참 곱다. 숲을 걷노라니 나무의 가을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든다. 초록으로 무성하던 여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숲속의 변화도 그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단풍이 들고 낙엽 지는 데도 저들의 질서에 맞춰 순서대로 흐르고 있나보다. 가을은 더욱 깊어져 그윽하고, 상수리나무 잎은 벌써 지고 있는데 단풍나무 잎은 아직 한창이다.가을 숲길로 들어서자마자 '아!'라는 짧은 감탄사만이 입 밖으로 새어나간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잎을 피우고, 떨구어 내기도 하는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한낱 인간의 오만함이 부끄럽기만 하다.
가슴 설레던 시절이었다. 새내기로 대학생활을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대와 호기심으로 행복했다. 매일 버스로 등교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창밖의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웠다. 봄바람에 하롱하롱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벚꽃 잎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나른해져 졸다 깨어보면 어느새 학교 앞이었다.학교의 규모나 환경을 본다면 부족하고 불편한 것뿐이었지만, 입시에 벗어났다는 해방감으로 마냥 즐겁기만 했다. 조선소의 한쪽 귀퉁이에 위치한 학교는 여느 대학캠퍼스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이었다. 캠퍼스라고 불릴만한 공간이 없다보니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
뒤꼍에 서 있던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다. 춥지 않느냐고 몇 번이나 물어도 입 꼭 다물고 대답도 않던 꽃눈이 어느새 벙글었는지 그 연한 꽃망울이 눈웃음을 친다. 하얀색에 파르스름한 연두색 그늘이 내려앉은 꽃잎이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있다.몇년 전 하동으로 문학기행을 갔다. 원래 기행이란 낱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기 마련이다. 내가 살던 곳을 떠나 또 다른 고장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 있는 일이다. 하동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그냥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으로 옛 이야기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은 고즈넉한
손주 손에 이끌려 어린이 놀이터에 왔다. 놀이기구래야 미끄럼틀·그네·시소가 전부다. 그중에서도 손주는 시소 타기를 좋아한다. 미끄럼 타기는 혼자서도 잘한다. 안전에만 신경써주면 그만이다. 그네 타기는 더 수월하다. 뒤에서 살짝 밀어주면 된다. 애들은 한 가지 놀이에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이것저것을 해보고는 마지막에 꼭 시소를 타게 된다. 반대편에 손주를 올려놓고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온몸에 땀이 흐른다. 양쪽의 중량 균형이 어느 정도 유지돼야 무리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인 것이다. 그러나 9㎏ 밖에 안되는 손주와 시소를 타
아이가 3학년이 되는 해 재 넘어 작은 시골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주변에선 잘했다는 말보다 "왜?" 라며 묻는다.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는 학교를 두고 시골학교로 전학을 보냈으니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얼굴이 늘 어두웠다. 쉬는 시간에 축구를 하고 싶은데 오늘도 구석에서 공 주고받기만 했단다. 학생 수에 비해 좁은 운동장은 고학년들의 차지였고 2학년 아이들의 공간은 언제나 구석뿐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은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학원버스를 타야 되니 같이 놀 친구도 없었다. 2학년은 아직
봄이 시작 된다는 3월이다. 이때쯤이면 햇빛이 조금은 따사로워 진다. 하지만 아직도 매서운 칼바람의 여운은 남아 있다. 봄볕에 설레는 마음으로 섣불리 두꺼운 외투를 벗고 얇은 옷을 꺼내 입었더니 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든다. 봄은 오지만 시작되는 봄은 되려 겨울보다도 더 추위를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땅은 이미 봄맞이 준비에 한참이다. 꽃샘바람이 한 번씩 훑고 가도 봄은 봄인 모양이다. 보슬보슬한 땅에 냉이는 지천이고 온갖 나무들은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푸성귀 정도는 직접 가꾸어 먹고, 가끔은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니 은근
수업을 마치자 수강생 한 분이 나를 살짝 당기더니 작은 손가방 속에서 비닐 팩에 싼 노란 꽃송이를 건넨다. 눈웃음으로 감사를 표하자 내 귀에 대고 "메리골드 꽃차예요. 선생님만 드세요."하신다.바쁜 일정들로 시간과 다투다 보니 차를 마실 여유가 없었다. 며칠이 지난 뒤 복잡한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차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노란 꽃차가 떠올랐다.커피포트로 끓인 물을 투명 유리잔에 부으면서 어떤 향일지 어떤 맛일지 은근히 기대가 됐다. 두 송이만 넣으라고 했지만 물이 조금 많은 것 같아 세 송이를 넣고 꽃이 피기를
날씨가 좋다. 유월의 초록빛이 춤을 추는 날에 친구 따라 근처 사찰에 갔다. 조용함 속으로 바람 한 결에 울리는 풍경 소리가 왠지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한다.산사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가만히 앉아 있는 개를 보았다. 삽살개라는데 외부인에게 짖지 않아 조금 친근감이 간다. 온몸은 짙은 회색털이고 한쪽 눈 위로 털이 수북이 덮여있어 한쪽 눈만 보인다. 그나마 조금 보이는 한쪽 눈은 나를 빤히 바라본다. 마주보다가 한쪽 눈을 덮은 털을 올려 주려니 개가 허락을 하지 않는다.두어번 손을 가져가니 외눈으로 나를 딱 쳐다본다. 순간 멈추었다. 불
또 두 녀석의 기 싸움이 시작됐다. 며칠전부터 시작된 영역다툼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모양이다.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는 시선에는 불이 이글거린다. 내가 다가가도 마당에 선 녀석도 데크에서 내려보는 녀석도 꿈쩍 않는다. 누구하나가 물러서주면 좋으련만 전혀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할 수 없어 어린 녀석을 강제로 안고 한쪽으로 옮기며 마당을 향해 "순심아, 어서 밥 먹고 가."순심이는 아랫집에서 사료를 얻어먹는 길고양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참 아름다운 여자였지 싶을 만큼 예쁘다. 순하고 착하기까지 해서 어딜 가나 사랑받을 법하다. 그
큐티는 언니네 집에 살고 있는 애완견이다. 시추 종으로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올해 초부터 키우게 되었다. 온 몸이 점박이 투성이다. 심지어 배에도 있다.어린 시절 집에서 개를 키웠기에 언니와 나는 개를 무척 좋아한다. 토종개를 보면 그냥 스치지 않고 발이라도 한번 잡아본다. 비록 토종개는 아니지만 언니네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게 되어 좋았다. 언니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뛰어나와 반겨준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커가고 있다.일곱 달쯤 지나자 그 식성 때문인지 웬만한 잡종견마냥 커가고 있었다. 한두 뼘만 하던 것이 다섯 뼘은 됨직했다
꽃이 흔들리고 있다. 바람에 꽃잎이 흔들리는 것인지 내 마음이 꽃잎에 흔들리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5월의 많은 꽃들 가운데서도 유독 이팝나무가 눈에 밟힌다. 이팝나무 꽃은 가엾은 며느리의 한이 하얀 쌀밥 꽃으로 피어났다니 애처롭기 그지없다.그녀는 이팝꽃을 좋아했다. 어쩌다 함께 걷다가도 이팝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더뎌지는 걸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눈은 오랫동안 하얀꽃에 붙들려 있곤 했다. 그럴 때 언니의 눈은 가늘게 떨리면서 흔들리기까지 했다. 가로수길에 흔히 보이는 꽃이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하얀 꽃잎
4월의 외포항. 멸치잡이 어선이 선창으로 들어오자 흩어져 있던 갈매기들이 일사불란하게 배 위로 모여 들더니 빙빙 원을 그리며 날고 있다. 선창에 배를 대자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가 더욱 요란해진다. 갈매기들만 바쁜 것이 아니라 작은 어촌 항구가 수런수런 살아나기 시작한다. 비릿한 갯내음이 코를 찌른다. 꼭 이맘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외포항의 멸치털이 장면이었다.밤새 바다에 쳐 놓았던 그물에 멸치가 걸린 그대로 건져와 선창에서 털어내는 작업이 시작된다. 건장한 장정들이 투박한 구령소리와 함께 그물을 느슨하게 주었다
아직은 캄캄한 새벽시간이다.요즘 따라 왜 이렇게도 새벽잠이 없는지? 새벽 출근 34년 동안 직장생활에 내 몸이 훈련되어 영혼이 굳어버린 탓일까? 아니면 나이 육십 중반으로 접어드니 뭇 사람들처럼 새벽잠이 줄어든 탓일까? 괜스레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새벽시간이다.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 몇 번을 거듭한다.차라리 '새벽길이나 걸어 볼까?'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들자 일어나 어둠속에서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고 두꺼운 양말도 신는다. 나 홀로 한 시간가량 새벽길을 걸어야 하니 고독함을 달래 줄 이어폰을 찾는다.그리고
너무 어렵다. 어릴 때부터 국어공부도 제대로 안된 자신이 혹여나 기회가 되면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제대로 알려 주고 싶어 6월 하순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너무 어렵다.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배운다는 게 뭐 어렵겠느냐고 하겠지만 여간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보통 우리는 중학교 때 초성·종성·불용성하고, 자음접변·구개음화 정도는 많이 들어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명확히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 동영상수업 120시간 중 이제 겨우 60시간 정도 강의를 들었지만 아직도 머리에는 제대로 정리가
해가 지면 외롭단다. 달이 뜨면 그립단다. 어쩔 수 없는 외로움 그리움이란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단다. 아내인 내가 곁에 있어 덜어주고 채워주긴 하지만 이 세상 올 때부터 가져온 것이라 어쩔 수 없단다. 섭섭해 하지 말란다. 이럴 땐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단다. 나도 그와 비슷한 속말을 품고 있기에 그 맘을 알 것 같다.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세상 사람들 모두 비슷한 외로움과 그리움을 지니며 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보름달이 허공에 홀로 떠 있다. 다 채웠지만, 다시 비워야 할 것을 아는 얼굴이다. 어쩌면 달도 그리움 때문
소녀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구릿빛 쇠 옷을 입고 성글게 손뜨개질한 털목도리를 두르고 앉았다. 곁에 놓인 빈 의자는 누구를 위해 비워두었는가. 노랑나비만 청산을 찾아 바다를 건너온다. 봄날이 저리도 따뜻한데 맨발로 한데 나앉은 소녀가 애처롭다. 어깨에 내려앉은 새를 파랑새라고 부르지 않으련다. 소녀를 태우고 구만리를 날아다니게 붕새였으면 좋겠다. 누군가 소녀에게 꽃을 선물하고 갔다. 오뉴월 땡볕에도 시들지는 않고 눈이 내려도 얼지 않는다. 꽃을 갖다 바친 소녀는 3교시 역사(歷史)시간에 소녀를 만났을 것이다. 검정치마, 하얀 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