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는 경남권에 속하지만 인근 지역인 통영·진주·창원 등과 문화예술 분야의 교류는 생각보다 원활하지 않다. 연극이나 공연도 그렇지만 미술 분야 역시 정기적으로 특별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으니 비슷한 실정이다. 지난 2012~2015년께 필자가 바다미술제를 운영하면서 경남의 청년작가들과 중견작가들을 적잖이 초대해 지역작가들과 함께 작품전시를 하면서 우리의 문화적 역량도 키우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후로 지역 여건이 변하면서 더 확대되진 못해 아쉬움이 남아 있다.교류전을 통해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면 시민들의 감상 기회도
남해의 아름다운 섬 거제, 거제대교와 거가대교 등의 다리가 놓여 이미 오래전에 육지와 이어졌지만 다리 아래 펼쳐지는 바다풍경은 여전히 육지와의 간격이 느껴진다.바다에 떠있는 작은 육지이며 고립되지 않는 섬, 그것이 거제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이곳은 육지로부터 찾아 드는 사람으로 늘 붐비는 관광지이면서 평온한 어촌의 정취가 남아있는 작은 포구도 있는 소담한 섬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제는 양면의 모습이 존재한다. 1980대 이후 조선산업 도시로 번성하면서 바다에는 거대 선박이 가득하고 상가·오피스텔·아파트 단지가 즐비하다. 외곽의 관광
거제시 장승포항에서 멀리 지심도까지 이어지는 바닷길을 수놓은 윤슬의 아름다움이 더하는 12월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 멋짐은 여태껏 그렇게 담담한 빛으로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마음이 빈약하고 거친 나는 이제야 그 눈부심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거제는 아름답습니다. 바다는 깊고 푸르며 이어지는 바위와 땅·나무와 숲이 전하는 숨결은 고요합니다. 해안선을 따라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동내들은 고유의 온기를 품고 담담하고 소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거제가 비록 산업화를 맞아 급격한 도시화로 몸살을 겪어도 여전히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모습을
거제가 낳은 자랑스러운 예술인으로서 우리나라 근현대를 대표하는 화가중 한 사람인 양달석 화백의 호는 여산(黎山)입니다. 스스로 지은 호 ‘여산’에서 ‘여(黎)’는 어떤 무렵의 녁으로 새벽(녁)의 희미한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산(山)의 모습을 의미하는데 밝은 미래에 대한 염원을 자신의 호에 담았다고 생각합니다.경술국치 2년 전인 1908년에 태어난 양달석 화백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암울함으로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양 화백의 삶 역시 늘 상실과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런 그가 화가로서의 삶을 택한 것은 어떻게
8월, 연일 30도를 웃도는 더위에 선풍기 바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열감을 에어컨의 냉기에 의존하니 몸은 차갑긴 하지만 청량감이 부족하고 개운함도 없다.길고 무더운 여름이다. 생각해 보면 부채 하나 달랑 들고 평상에 걸터앉아 모기 쫓고 더위도 물리던 옛날 어른들은 낭만이라도 있었다. 당시의 환경이 그랬기에 하고 단정할 수도 있지만, 큰 그늘을 만들던 나무 아래서 혹은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집 앞마당에서 더위를 피하려 소담하게 이것저것 준비하던 모습을 통해 오히려 한여름을 나름대로 잘 즐기고 있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론강의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장승포에서 애광원 앞으로 이어진 신작로를 따라 지세포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꼬리가 긴 여름날의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어 산 그림자 드리워진 도로에 옅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 무렵이었다.비포장길 여기저기 널린 돌부리에 걸리지 않으려 발아래서 눈을 떼지 못한 우리는 얼마 걷지 않고 목은 저리고 다리도 아프다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모두 도로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자연스레 하루에 몇번은 만나서 익숙한 장승포 바다 풍경을 바라보았다.그때의 바다는 채 가시지 않은 푸름이 남은 하늘과 맞닿았으며 노을에 연분홍색
"생존 작가 중 최고가 판매 기록을 가진 미국의 현대 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품이 관객의 실수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지난 2월 미국 마이애미 '아트 윈우드' 아트페어 개막을 맞아 열린 VIP 행사에서 한 여성 방문객이 쿤스의 도자기 작품 '풍선개(Ballon Dog)'를 손으로 두드려 받침대에서 떨어뜨렸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했다.한화 약 5500만원 정도로 평가되는 해당 작품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100여 개로 조각났다. 계획된 행위예술로 여겼던 관객들은 직원들이 황급히 달려오고 몹시 당황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고서는 심각한 사고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2월 언제는 날씨가 너무 따뜻했는데 3월 지금의 날씨는 오히려 쌀쌀하니 추운 겨울을 끝내는 화사한 봄볕을 기대하던 우리에게 봄은 봄 같지 않습니다. 매년 3월이면 늘 듣는 말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중에도 꽃나무는 조용히 싹을 틔우고 메마른 풀밭 사이에 얼핏 연두의 가녀린 새싹이 보이니 완연한 봄날은 멀지 않았습니다. 봄은 계절을 뜻하는 말이지만 은유의 의미를 오히려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봄볕, 감미로워 마음을 설레게 하는 봄바람, 겨울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 등 자연의 봄은 시작이며
그림을 그리다 보면 형식과 격식을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작업임을 실감한다. 피카소나 살바드로 달리 같은 천재들의 그림에 감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거침없는 변화와 자유로움, 선묘의 유연함 등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에 있다. 개성 있는 구성과 탁월한 감성표출은 연습과 노력 외에도 그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요소가 필요함을 느끼게 한다.작가는 개성 있는 작품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하지만 작품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히스토리, 경험과 노력의 정도, 선천적인 미감들로 인해 대중의 느낌과 평가는 엇갈리게 된다
색의 조각을 맞추듯 마치 모자이크와 같은 느낌의 풍경화를 그린 구스타프 클림트는 대표작 키스(1908)·생명나무(1909)·유디트 등이다.이와 같은 장식적이면서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묘사한 에로티시즘의 작가로 알려졌지만, 그가 남긴 작품 220점 중 25%가 풍경화다.작품들은 하나같이 색채감과 세심한 붓 터치로 독특한 공간 구성을 보여주고 있어 그는 오히려 뛰어난 풍경 화가로 재평가돼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그의 풍경화는 생애의 마지막 10년 사이에 열정적으로 많이 제작됐으며 주로 오스트리아 북부의 아터제 호숫가의 풍경을 담고
간밤에 내린 폭우로 기온이 조금 내렸는지 선선한 느낌에 모처럼 편안히 눈을 떴다.테라스에서 바라보이는 지세포항의 옅은 해무가 맞은편 낮은 산허리까지 번져 검정 같은 초록과 어울려 담담한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어 보여주니 기대하지 않은 호사가 느껴진 아침이었다.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멋진 광경을 만나게 되면 머리카락의 끝이 서고 차가운 전율이 흘러 몸과 마음이 각성된다.작가로서 늘 긴장하고 작업에 대해 오랜 고민을 하지만 그 시간만큼의 분명한 결과를 보기는 쉽지 않다.솔직히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답이
최근 한국의 미술계는 유래 없는 호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개최된 화랑미술제를 비롯한 각종 '아트페어'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이어져 작가들의 창작활동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전통적으로 고가를 형성하는 작가의 그림에서부터 신진작가에 이르기까지 컬렉터들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시장이 형성되긴 하지만, 예술적 가치에 가격을 치르거나 투자하는 것이 일반화된다는 것은 또다른 변화와 발전을 의미합니다.한편으론 다소 지나친 확장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분위기에 편승해 대중의 관심만을 끌기 위해 양산되는 것에 대한 경계입니다. 대중
이중섭은 일본 유학시절인 1945년 학교 선후배 사이였지만, 후에 그가 ‘이남덕’이라 이름한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와 결혼하였습니다.일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마사코는 그의 아버지가 가족을 굶기지 않는다면 화가라는 직업은 개의치 않는다며 결혼을 승낙하자 단신으로 한국으로 건너와 이중섭과 혼례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6.25 전쟁의 발발로 깨어졌으며 평안도 지주의 아들이었던 이중섭은 황급히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피난 생활은 부산에서 제주도로 다시 부산으로 이어졌으며 고난한 피난 생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는 그동안 대가 없이 누렸던 평범한 것들에 차츰 그리움을 느끼고 있다.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주말 오후의 한가함을 즐기던 동네 까페에서의 커피 한잔, 어릴 적부터 함께한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던 단골 주점의 어둑함과 익숙한 소음 그리고 그들의 낮은 속삭임과 간간히 터지는 웃음소리에서 느끼는 부드러움, 동료들과 떠났던 다소 뻔한 단체 여행이 주는 편안함, 이런 것들이 그립고 관계에 대한 목마름이 느껴진다.이제 슬슬 체력이 달리고 무언가 혹은 그 어떤 것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다.늘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은
양달석 화백은 1908년 사등면 성내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에 의지해 성장기를 보냈으며, 18세인 1925년에 전 조선미술전람회 최고상 수상을 계기로 화가가 될 결심을 했습니다. 거제를 벗어나 부산에서 평생을 전업 작가로 활동했습니다.화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중 해방과 한국전쟁을 맞았으며, 한국전쟁 해군 종군기자로 참여해 전쟁으로 피폐해진 도심과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작품으로 시대의 아픔을 통찰력 있게 표현했습니다.양 화백의 대표작인 이상향의 풍경에 천진난만한 소년·소녀가 등장하는 작품들은 불우했지만 순수
여산 양달석 화백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며'는 수채화로 담담하게 그린 자신의 일기장 같은 작품이다.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 얹혀살면서 스스로 밥값은 해야 했던 어린시절, 소를 몰아 풀을 먹이고 땔감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자기 몫의 노동이었기에 일상은 고단했으리라 짐작되나 그는 또래들과 어울림·자연과 교감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하지만 '어린시절을 생각하며'를 제작할 당시에는 자기 연민을 숨길 수 없었던지 그림은 적막하고 쓸쓸하며 외로움이 전해져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제 우리의 삶도 철학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늘 관계 속에서 살아와 우리 속에 갇힌 듯 외부와의 물리적 소통이 어려워져 과거의 가치관만을 가지고는 견디기 쉽지 않다는 생각 때문입니다.사람 간에 공유하지 못함에서 오는 외로움은 SNS 등 비대면을 대체하는 많은 것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소되지 않고 고립과 그로 인한 고독이야말로 인간이 느끼는 가장 본질적인 불안이기에 변화는 더욱 절실합니다.하지만 최근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고 미술작품을 통해 감정의 소통과 공감의식을 키워가고 있다는 소식을 통
4월의 하늘은 빛나는 햇살과 바람결을 따라 늘어선 옅은 구름으로 멋을 낸 채 찬란하고 따뜻한 봄날의 시작을 알린다.여린 봄바람은 옷깃을 스치고 대기는 따뜻하게 달아오른다.겨울을 견뎌오며 움추렸던 마음과 시려오던 발끝은 간질거리고 볼살에는 발그레한 온기가 오르니 잠시나마 마음속의 무거움이 가라앉는다.김영명 작가가 보여주는 또다른 봄의 모습인 '소녀에서 여인으로'는 아직 앳된 모습이지만 숙녀로서 인생의 새봄을 맞이하는 어느 여대생의 초상이다.뭉글한 꽃 더미 아래로 익숙하지 않은 차림으로 대문을 나선 그녀의 모습에서 새로운
'마음결 향기를 따라가니 꽃에서 내가 보여 한지 위에 반복된 붓질로 겹겹이 색을 쌓아 올려 꽃을 그린다. 꽃 결을 따라 아스라한 상념을 그려보니 부드러운 긴장의 리듬이 시적 운율처럼 교차돼 나의 언어가 되었다. 문득, 마음을 스치는 생각과 까닥 없이 데워진 감정들을 놓치지 않고 마음 한 켯에 쌓아 두고 그것이 서사를 이루면 나의 이야기는 꽃을 피우는 대지가 되고 공간이 된다.' - 이유경 작업노트 中작가 이유경의 작업은 내밀하며 강도 높은 노동이 요구된다. 반복된 붓질과 형상화의 과정은 적지 않은 인내가 필요하며 다소
“김미진 작가의 작품은 산·바다·땅과 같은 자연을 동그랗게 표현하고 다채로운 색이 담겨 밝고 따뜻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동화 속 세상과 같은 작품 속 이미지는 어른들에게는 잊고 있던 상상 속 세상이며 어린이들에겐 꿈꾸는 세상일 것입니다. 김미진 작가의 작품세계는 스스로 꿈꿔왔던 세상이 시각화된 화면을 통해 감상자들이 더 넓고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끝없는 상상을 키워주는 힘을 가졌습니다.” - 오픈갤러리 최지수 학예사“화가의 존재가 중요한 것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연을 보는 법